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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끄고 보는 지혜

IAOM 2025. 6. 28.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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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끄고 보면 오히려 잘 보이는 것들

"불을 끄고 보면 오히려 잘 보이는 경우가 있다"

가와이 하야오의 『마음의 처방전』에서 마주한 이 문장이 며칠째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책에서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선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던 선원이 계속 불을 켜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애타게 찾다가, 결국 불을 끄고 나서야 완연한 어둠 속에서 희미한 육지의 불빛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엔 단순한 역설로 들렸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우리 일상 곳곳에 숨어있는 깊은 진리였다.

 

밝은 조명 아래서 놓치는 것들

우리는 보통 뭔가를 더 잘 보기 위해 불을 켠다. 더 밝게, 더 선명하게 보려고 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 밝은 빛 때문에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기도 한다. 마치 도시의 네온사인 불빛이 너무 밝아서 아름다운 별빛을 가리는 것처럼 말이다.

일에서 발견하는 '불 끄기'의 힘

작년에 있었던 일로 기억한다. 프로젝트 마감이 코앞인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밤늦게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머리를 쥐어짜내고, 더 열심히 생각하려고 애썼지만 머릿속은 더욱 하얗게 변해갔다.

결국 포기하고 산책을 나갔다. 스마트폰도 집에 두고, 그냥 걸었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20분쯤 걸었을까? 갑자기 머릿속에서 해결책이 떠올랐다. 그렇게 애쓰며 찾던 답이 '불을 끄고' 있을 때 찾아온 것이다.

이런 경험,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너무 집중해서 보려고 하면 오히려 시야가 좁아진다. 때로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고, 잠시 내려놓는 것이 더 넓은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가끔은 걷기도 하고, 다 잊고 푹 자보기도 하고, 아니면 다른 문제에 집중하다 보면 갑자기 해결의 실마리가 '세렌디피티'처럼 떠오를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이 원리가 적용된다. 친구든 연인이든, 너무 가까이에서만 보려고 하면 그 사람의 한쪽 면만 보게 된다. 마치 코끝에 책을 가져다 대고 글자를 읽으려는 것과 같다.

얼마 전 오랜 친구와 작은 다툼이 있었다. 그 친구의 말 한마디가 계속 마음에 걸려서 며칠간 그 말만 곱씹고 있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나를 무시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 상황 전체를 다시 돌아보니 다른 모습이 보였다. 그 친구가 그때 얼마나 힘든 상황에 있었는지, 평소 나에게 얼마나 따뜻했는지가 보였다. 한 순간의 말에만 집중하느라 그 사람의 전체 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관계에서의 '불 끄기'는 때로는 물리적 거리를 두는 것일 수도 있고, 때로는 마음의 거리를 두는 것일 수도 있다. 너무 가까이에서 현미경으로 보듯 하지 말고, 조금 떨어져서 전체 그림을 보는 것. 그러면 그 사람의 다른 면들, 좋은 면들이 더 잘 보인다.

어둠 속에서 발견하는 빛

공교롭게도 주초반 책을 읽고, 이런 글을 구상하고 있던 이번 주 중반에 택시를 타고 가다가 기사님께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몇년 전 밤늦게 가로등도 없는 산길을 운전하고 가시는데, 갑자기 고라니 두 마리가 길 한복판에 나타났다고 한다. 전조등 불빛에 놀란 듯한 고라니들은 도망가기는커녕 한참을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경적을 울려도 소용없었다.

"그래서 전조등을 끄고 잠시 기다렸어요. 그랬더니 고라니들이 슬슬 다른 곳으로 가더라고요."

기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가와이 하야오의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때로는 더 밝게 비추려 할수록 상황이 꼬이고, 잠시 불을 끄고 여유를 가질 때 길이 열리는 것이다. 너무 조급하게 몰아붙이는 것보다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지혜 말이다.

불을 끄는 용기

하지만 '불을 끄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리는 뭔가를 놓칠까 봐 두려워한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쉬는 것을 게으름이라고 생각하고, 거리를 두는 것을 무관심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때로는 내려놓는 것이 더 큰 용기일 수 있다. 잠시 손을 떼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는 것.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더 넓은 시야로, 더 깊은 통찰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밤하늘의 별은 도시의 환한 불빛 아래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조금 어두운 곳으로 가야 별빛이 보인다. 마찬가지로 우리 삶에서도 가끔은 '불을 끄고' 바라봐야 하는 것들이 있다.

일에서 막힐 때는 잠시 쉬어보자. 관계에서 답답할 때는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보자. 그 어둠 속에서 우리는 더 소중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와이 하야오의 한 문장이 알려준 지혜. 때로는 불을 끄고 보는 것이 더 잘 보는 방법이라는 것. 오늘 밤, 당신도 잠시 불을 끄고 바라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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